7233 Highway 162, Willows, CA 95988
윌로우스 비행학교 터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의 모태가 되는 최초의 독립군 비행사 양성소.
UC버클리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캘리포니아주 북쪽 끝에 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1920년 상해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과 쌀농사로 거부가 된 김종림이 의지를 투합해 만든 비행학교다.
김종림은 문을 닫은 퀸트학교를 임대하고, 인근에 비행장부지 40에이커, 평수로 약 4만9천평을 매입한다. 당시 현지 신문인 ‘윌로우스 데일리 저널’은 1920년 2월 19일자 1면 톱기사로 비행학교 개설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노백린 장군은 1920년 6월 22일 첫 비행기를 들이고, 이틀후 두번째 비행기가 도착한다.
이때 산 비행기는 ‘스탠더드 J-1’ 모델인데, 단순한 실습용 비행기가 아니라 전투용 화기를 장착하면 언제라도 실전에 참가 가능한 기종이었다.
이후 7월 5일 학생 15명, 예비 입학생 10명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학교가 개소된다.
비행학교가 세워지기전 한인 청년들은 윌로우스 인근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이미 조종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이들과 노백린 장군이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은 현재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남아있다.
사진속 조종사들은 청년혈성단을 만들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당시 윌로우스 비행학교에 들어와 생활하고 정비했던 건물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 비행학교 유적지에는 눈여겨 볼 것이 또 있다. 바로 당시 비행훈련을 하던 활주로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그냥보면 농작로쯤으로 여겨질 흔적이지만, 100여년전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비행훈련을 했던 독립투사들의 투지를 생각하면, 결코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는 광경이다.
독립군 공군 양성이라는 원대한 꿈은 약 2년여간 계속됐고, 수십명의 한인청년들을 비행사로
훈련시켰다.
이후 김종림의 쌀농사가 기울어 더이상 비행학교에 지원하지 못했고, 결국 비행학교는 폐교되는데, 이후 77명의 졸업생은 뿔뿔이 흩어져 민간인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거나 미군이나 중국군에 들어가 직간접적으로 대일 전정에 참가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 2018년 8월, 클렘카운티 의회에서는 현재 윌로우스 비행장 구역내 20에이커 부지를 기념관 건립을 위해 연 24달러에 30년동안 리스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