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Reed Ave, Reedley, CA 93654
김형순 저택
김형제상회 건너편에 김형순 저택이 있다. 현재는 개인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저택이라 입구와 집건물의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김형순은 1886년 경남 충무에서 태어나 1901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3년 하와이 첫 이민배의 통역으로 왔다. 1909년 귀국했다가 한일합방이 되자 상해로 망명했다가 리들리시에 정착했다.
김형순은 영어에 능통해 회사 경영에 주력하고, 동업자인 김호는 독립운동에 더 참여를 많이 한 것으로 나온다.
대한인국민회 집행위원장, 신한민보 발행인을 지냈고, 현재 LA한인회관의 전신이 Korea Community Center, LA한인회의 전신인 LA거류민회 창설을 주도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김형순은 김호와 더불어 막강한 재력과 지도력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일과 동포기관을 지원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사업가로서 김형순은 현실주의에 입각한 실용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방법도 미국적 실용주의와 민주적 방법을 통해 현실적 실천을 모색하였다. 기존 독립운동의 방향이 봉건적 지도력과 빈약한 경제력에 의지하여 전개되면서 침잠하던 시기, 그는 대한인국민회를 되살리는 데 앞장섰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활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김형순은 1977년 1월 25일 91세로 별세하였으며, 장례식은 대한인국민회장으로 치러져 리들리 공동묘지(Reedley Cemetery)에 안장되었다.
김형순의 저택은 1982년부터 미국인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그때 리모델링했다고 한다.